며칠 전, 퇴근길에 딸아이 가방에서 낯익은 한국사 교재 한 권이 쏙 튀어나왔습니다.
“이거, 표지가 왜 이렇게 부드러워?” 무심코 물었더니 아이가 웃으며 말하더군요. “이번엔 선생님이 반짝이는 거 말고 무광으로 해달랬대요.” 인쇄 일을 오래 해 온 저로선 괜히 더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음 날, 남동고등학교에서 한국사 부교재 인쇄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수량은 200부. 전체 마스터 인쇄라는 점에서 저희가 자주 맡는 교육 인쇄물과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요청사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표지는 PP필름 말고 무광 라미네이팅으로 부탁드립니다.”
단순한 단가 때문이 아니에요. 요즘은 학생들이 교재를 오래 쓰는 만큼 지문이 덜 묻고 눈부심 없는 표지를 선호하는 분위기입니다. 저도 그 이유를 아주 잘 압니다. 그래서 이번엔 그 작업 과정을 살짝 정리해 보려 합니다.
무광 라미네이팅, 보기엔 예쁜데 까다로운 친구
책의 표지 가공은 첫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출판 쪽에선 보통 유광 라미, 무광 라미, 그리고 PP 코팅 필름을 자주 씁니다. 저희 네오다큐에서는 소량 출판물부터 명함, 가변데이터 출력까지 다양한 작업을 하며 상황에 맞는 마감 방식을 추천드려 왔지요.
무광 라미는 고급스럽고 은은한 질감이 매력입니다. 특히 교재처럼 장시간 보는 책에는 반사광이 없다는 점이 큰 장점이죠. 그런데 말이죠, 보기엔 예쁜데 까다로운 면이 있습니다. 색감이 살짝 죽어 보이기도 하고, 표면이 찍히거나 눌리는 자국이 은근 잘 보이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인쇄 전에 꼭 디자인 상태를 꼼꼼히 체크합니다. 종이의 평량에 맞춰 라미네이팅 온도와 속도도 정확히 조절해야 해요. 특히 무광은 재단이 조금만 어긋나도 귀퉁이가 헤지는 경우가 많아 후가공팀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작업합니다.
하루 만에 끝낸 200부, 마스터 인쇄의 숨은 장점
이번 부교재는 ‘마스터 인쇄’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오래된 인쇄소에서는 익숙한 방식인데, 디지털 인쇄보다 빠르고 부수당 단가가 낮아 교육 현장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물론, 이미지나 컬러가 많은 책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컬러 정밀도가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 이번 한국사 교재는 단색 중심의 텍스트 구성이라 문제없었습니다.
200부라는 수량은 시간 안배에도 딱 좋았습니다. 오후에 파일 접수받고 디자인 확인, 출력, 라미네이팅, 재단, 포장까지—다음 날 납품 완료! 학교 일정이 촉박한 경우, 이런 속도전이 필수입니다. 저희도 그 점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작업을 이어갔죠.
부교재 제작, 그냥 ‘출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이거 단순 출력인데 왜 준비 시간이 필요하죠?” 저희의 대답은 늘 같습니다. ‘출력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육 내용이 어떤지, 어떤 환경에서 쓰일 건지에 따라 인쇄 방식과 재료, 마감 처리까지 전부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항상 ‘그냥 인쇄’보다는 ‘목적에 맞는 인쇄’를 추구합니다. 예산, 납기, 사용 목적을 함께 고민하며, 결과물이 가장 알맞게 쓰이도록 돕고 있습니다.
사실 교육용 인쇄물이라고 해서 다 똑같지는 않아요. 같은 형식처럼 보여도 요청에 따라 달라지는 디테일이 있고, 그걸 잘 캐치하는 게 저희 업의 진짜 실력 아닐까 싶습니다. 반복 작업 같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매번 다른 일, 바로 이 점이 인쇄 작업의 재미이자 어려움이죠.